제도적 측면에서 한국 주식시장 저평가를 유발하는 주요한 요인은 패시브 수급 문제다. 한국 주식시장이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기준으로 신흥국에 속해 발생하는 문제다. 신흥국 주식시장은 선진 대비 장기간 상대수익률 하락을 겪고 있다. 주식시장 패시브 수급에서 신흥국은 소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88년 이후 신흥국 주식시장은 선진 대비 8년 주기로 상대적 강세장과 약세장 전환을 경험했다. 신흥국은 냉전 종식에 따른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부상했고, 외환위기 전개 과정에서 약세장을 겪었다. 중국 세계 무역시장 등장으로 8년간 강세장을 보였으나 금융위기 후 선진국 중심 성장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상대수익률 하락을 10년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자금 흐름도 수익률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자금 흐름은 신흥국보다 선진국 위주였다. 뱅가드(Vanguard) 선진국과 신흥국 ETF 운용잔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뱅가드 선진국 ETF 운용잔고는 2010년 초에 비해 1,618% 증가했다. 반면 신흥국 ETF 운용잔고는 2010년 초 대비 249.4% 증가에 그쳤다. 신흥국 ETF 운용잔고 증가 속도는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이후 2013년 중반까지 선진국에 앞섰으나 둔화 추세다.
반면 선진국 ETF 운용잔고 증가 속도는 2013년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과 2015년 말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 사이클을 거치며 가속화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국면이었던 지난 2년으로 시계를 좁혀도 선진 우위 자금 유입세는 더 뚜렷하다. 뱅가드 선진국 ETF 운용잔고는 2020년 초에 비해 22.7% 증가한 반면 신흥국은 9.7% 증가에 그쳤다. 코로나19 국면을 통과하면서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른 마이너스 기간 프리미엄 상황을 이어갔음에도 과거와 달리 신흥국으로 이동하는 자금 규모가 크지 않았다. 선진국 주식시장 위주 자금 유입세는 앞으로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MSCI 신흥국 지수 내 한국 주식시장 비중은 2012년 말 15.4% 였으나 현재는 12.0%로 3.4%p 하락한 상태다.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 내 한국 주식 비중은 벤치마크를 하회하는 11.9%다. 신흥국 지수 내 한국 주식시장 순위는 4위로 하락했다. 한국 주식시장은 지난 10년간 박스피를 벗어나는 등 성과를 거뒀으나 상대적으로 ‘잘 난 이웃’을 둔 탓에 비중 하락을 겪고 있다.
중국 주식시장 비중 상승이 돋보인다. 신흥국 지수 내 중국 주식시장 비중은 2012년 말 13.0%였으나 현재 32.4%로 19.4%p 상승했다. 중국 주식시장의 괄목할 성과도 중요한 역할을 했겠으나 지수 내 ADR(미국주식예탁증서) 편입(2015~2016)과 A주 단계적 비중 상승(2018~2019)이 결정적이었다. MSCI는 중국 A주 지수 편입 비중을 20%로 반영하고 있다.
중국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유동성을 제한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한다면 MSCI는 해당 비중을 점진적으로 상향시킬 수 있다. 현재 미중 마찰 관계를 고려하면 당장 현실화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없으나 한국 주식시장 투자자 입장에서 잠재적 위험 요소다. 인도 주식시장 비중 상승 성격도 중국과 유사하다. MSCI는 2021년 11월 인도 주식시장 비중을 확대했다. 외국인 접근 제한 철폐 덕이다. MSCI 신흥국 내 비중 상승으로 인도 주식시장향 자금 유입이 지속됐다. 인도와 한국 주식시장 신흥국 지수 내 순위는 해당 조치 이후 자리를 바꿨다. 인도가 3위다.
지수 내 국가 가중치 조정에 따른 한국 주식시장 비중 하락 위험은 MSCI 신흥국 지수 내 상존한 위험이다. 상대적으로 금융시장 성숙도가 낮은 신흥국이 제도 개선을 통해 국가 비중 가중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ARAMCO) 유동비율 상승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사우디 외 국가 비중 하락을 불러올 재료다. 한국 주식시장 투자자에게 언젠가 다가올 위험이다.
중국 기업 IPO가 증가하고 있는 점도 한국 주식시장 비중 하락 요소다. 중국 기업 2020년 IPO 규모는 역외와 역내를 합해 1.3조위안을 기록했다. IPO 건수도 2020 년 최고치였다. 2021년은 미중 간 관계 악화에 따른 나스닥 상장 철회, 중국 정부 빅테크 규제 영향에 규모와 건 수 모두 급감했으나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 주식시장 대신 홍콩을 통한 상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 증시 개장을 통해 역내 IPO를 장려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대규모 IPO를 통한 중국 주식시장 확대는 중국 외 국가 비중 하락으로 직결될 요소다. 실제로 2022년 중국 기업들이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 규모는 2021년 같은 기간 대비 40% 증가했다. 미국과 중국 기술 경쟁이 본격화할수록 중국 테크 기업 상장이 증가할 전망이다. 신흥국 지수 내 한국 비중을 낮출 수 있는 위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