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5~20년간 미국은 중국과의 인공 지능, 사이버산업 경쟁에서 이길 가망이 없다. 내 생각에는 이미 게임이 끝났다."
- Nicholas Tylan -
지난 10월 미국 국방부 최고소프트웨어책임자(CSO) 니콜라스 타일런(Nicholas Tylan)의 사임 직후 첫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미군의 느린 기술 혁신 속도를 꼬집으면서 중국의 AI, 딥러닝 등 사이버 기술의 발전이 세계를 지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인공지능 기술의 현주소를 잘 나타내는 대목이다.
최근 다시 불붙은 미·중 갈등의 본질도 이러한 중국 첨단기술 궐기를 어떻게든 늦추려는 미국의 전략적 포석이다. 지난 12월 9일에는 미 상무부 블랙리스트에 중국 최대 AI 안면인식 기업인 센스타임이 추가되면서 사실상 중국을 대표하는 AI 업체 모두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됐다.
미국의 견제에 중국은 오히려 AI를 미래 핵심전략 산업으로 내세우며 독립적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AI의 상용화를 이끄는 자율주행이 그 중심에 있다.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자율주행을 첨단 육성 산업으로 지정하여 AI칩, 스마트카, 자율주행 기술 개발 분야에 전폭적인 자금 지원과 정책을 추진 중이다. 2025년까지 전체 신차 판매량의 50%에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하고, 2030년 레벨 2·3 자율주행 차량 침투율을 70%, 레벨4 자율주행 차량은 2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자율주행은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전장의 하드웨어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데이터에 기반한 IT 기술이 성패를 가른다. 나아가 핀테크, 콘텐츠, O2O, 물류 등 무한한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구글, 엔비디아, 인텔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자율주행 시장을 선도하는 이유다. 중국도 B.A.T로 대변되는 인터넷 플랫폼 업체들이 자율주행 시장을 이끌고 있다. 바이두는 2017년부터 ‘아폴로(Apollo)’라는 이름의 자율주행 플랫폼 기술을 개발해왔고 알리바바는 상하이자동차와 합작해 만든 전기차에 자체 개발 자율주행 시스템 ‘AliOS’를 탑재했다. 이 밖에 니오, 샤오펑, 리오토 등 전기차 스타트업 뒤에도 플랫폼 기업들이 있다.
가장 선도적인 기업은 바이두다. 중국 자율주행 운행 데이터의 91.2%를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력은 압도적이다. 이미 2017년부터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자율주행 플랫폼 ‘아폴로’ 프로젝트를 출범해 로보택시, 미니버스, V2X(지능형 차량 협력 솔루션), 스마트 교통신호 등 총 7개 부문 으로 확장하고 있다. 성과가 돋보이는 부문은 바로 자율주행 기술 4단계를 도입한 '아폴로 고 로 보택시'(Apollo Go Robotaxi)다. 지난해 10월 베이징을 시작으로 상하이, 광저우 등 6개 도시에서 시범 서비스 중이다. 현재까지 누적 승객 수는 50만명, 누적 주행거리는 1,800만km를 상회한다. 지난 11월 25일, 바이두는 포니 에이아이와 함께 베이징시 로보택시 사업 라이센스를 최초로 취득했다. 면적 60km²(서울시 면적의 1/10)의 베이징시 경제기술개발구 내에서 운영된다. 바이두는 총 67대를 운행하고 있으며 기본요금은 18위안(약 3,375원), 1km당 요금은 4위안(약 750원)이다. 로보택시 전용 앱인 ‘뤄보콰이파오(蘿蔔快跑)’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인근 의 로보택시를 호출해 이용할 수 있다.
아폴로 고 로보택시는 대부분의 도로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4 수준으로 운전석에는 기사가 아닌 안전요원이 동승한다. 돌발상황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간은 조작하지 않고 교통 상황만 주시한다. 중국의 교통 문화는 우리와 매우 다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들을 사이로 우회전을 하기도 하고 건너편에서 차가 오고 있음에도 비보호 좌회전을 한다. 유턴 금지 표시만 없으면 어디든 유턴이 가능하다. 아폴로 고 로보택시는 이 복잡한 중국의 교통 상황에서도 무리없이 수행한다. 돌발상황에 대응이 부족한 부분은 그간 누적된 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딥러닝을 통해 완성 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은 중국의 자율주행 택시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1조3,000억위안(약 240 조원)까지 확대되어 차량 호출 시장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2~3개의 주요 서비스 제공업체가 지배하게 될 것이며 상위 제공업체가 전체 점유율의 4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바이두는 로보택시 운행 도시를 2025년 65곳, 2030년 100곳까지 확대해 업계 선두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향후 중국 로보택시 시장의 최종 승리자가 될 것이다.
자율주행 하드웨어 영역에서도 주목할 만한 기업이 있다. 바로 중국 자동차 전장 기업 더사이시 웨이(002920.SZ)다. 사업부문별 매출 비중은 디지털 콕핏 82%, 자율주행 14%, 기타 4%로 구성된다.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은 자동차 1 열에 위치한 운전석과 조수석 및 전방 영역의 전자기기를 지칭한다. 디지털 계기판, 네비게이션, 디스플레이, 오디오 시스템 등으로 구성되며 최근 자율주행 상용화에 따라 더 각광받고 있다. 사용자의 운전 개입이 적어지면서 자유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대형 디스플레이로 유튜브 시청, 인터넷 쇼핑 및 화상회의 등업 무처리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기존에 따로 구성되던 계기판과 대시보드 등 운전석 전방영역이 30인치 이상 대형 디스플레이 하나로 구성되는 추세다. 차량 내부가 ‘제3의 생활공간’이 되는 셈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은 자율주행 부품이다. 중국 자율주행 티어1 전장부품 시장 점유율 11%로 1위 업체이며 엔비디아의 6개 글로벌 티어1 벤더사 중 유일한 중국 기업이다. 주요 제품은 전자제어 장치(ECU) 및 V2X, IPU, 360도 영상 시스템, 자율주차 시스템, 밀리미터파 레이더 등이다.
IPU는 자율주행을 위한 중앙처리 장치로 엔비디아의 자비에르와 오린 SoC를 기반으로 레벨3 자율주행을 구현한다. 주력 모델인 IPU3는 멀티 센서 데이터 수집을 통해 자동차 주행 상태를 계산하고 실시간 360도 주변 인식 기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미 샤오펑의 자율주행 전기차 P7 에 탑재되며 대량 양산에 성공했다. 기술력을 한층 끌어올린 IPU4 개발도 완료해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있다. 이르면 내년 6월 정식 출시가 예상되며 샤오펑, 리오토, 상하이자동차 등 기업에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